- 칼아츠의 입학 기준은 어떤가요?
칼아츠는 시험이 없고, 포트폴리오와 칼리지에서 공부한 성적표만 있으면 돼요. 그마저도 성적표는 거의 안보고 그림이나 애니메이션에 얼마나
재능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죠. 저는 한국 화실에서 그렸던 데생과 칼리지에서 4년동안 인체데생 했던 것들 그리고 스케치북에 낙서한 것들을
모아서 보냈는데 다행히 합격이 됐어요.
- 그런 낙서 같은 것도 포트폴리오로 인정을 해 주는 건가요?
재미있는 게, 가이드라인에는 인체데생이 보는 기준의 30~40%를 차지한다고 되어 있는데 막상 학교 들어가서 친구를 사귀고 얘기하다 보니까
어떤 친구는 인체 데생을 하나도 할 줄 모르는 거예요. 어떻게 들어왔냐고 물었더니 스케치북에 자기가 지금까지 그려온 걸 다 넣었대요.
꽃, 나비, 사물, 해변가에서 사람들이 수영하는 것들 등등. 사실상 기준점이 없는 거예요. 이 학생의 독특한 세계관을 보고서 이 친구를 뽑은 거였죠.
제가 칼아츠 다니면서 힘들었던 부분이 바로 룰이 없다는 거였어요. 한국사람들은 틀에 박힌 룰을 잘 따라가요. 그 안에서 경쟁도 잘하고요. 그런데
룰이 없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한 번은 디자인 클래스에서 숙제가 “태양을 표현해봐.” 그게 다였어요. 그러면 한국인들은 혼란스러운 거예요. 페인팅인지, 그림인지, 사진인지, 어떻게
표현해야 되는지 뚜렷한 가이드라인 없이 태양을 주제로 뭘 만들어 오라고 하니 막연한거죠. 반면 미국 애들은 전부 “OK” 하고 나가요. 과제를 벽에 붙이는데
다들 가지각색으로 해 왔어요. 누구는 종이에 노란 점만 찍어오고, 누구는 일회용 종이접시를 노란색으로 페인트칠 해서 벽에 붙이는 애들도 있고. 어떤 건
'저걸 정말 숙제라고 해왔나?' 하는 것들도 있었죠. 한 사람씩 나와서 브리핑을 하는데 나의 컨셉은 뭐였고 왜 이런 접근을 했는지 들어보면 정말 그럴듯해요.
한마디로 말로 때우는 거죠. 그런데 다 받아줘요.
포트폴리오라는 것도 이렇게 본다라고 했지 반드시 이 룰대로 따라간다가 아닌 거예요. 그냥 스케치북 들여다 보다가 딱히 이것도 저것도 아니지만
뭔가 다른 부분에 재능이 있으면 뽑는거죠.
- 누구에게라도 열려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엄청 열려있죠. 하지만 제가 칼아츠에서 3년을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준비가 안된 학생들은 칼아츠의 밸류를 모른다는 거예요. 칼아츠를 졸업한 많은 이들이
칼아츠 배운게 없다고 욕을 해요. 학생들은 '디즈니식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배우러 왔는데 왜 가르쳐 주질 않냐' 하고 학교에서는 '미래를 본다면
디즈니 스타일이 아닌 다른 포맷으로 가야 된다'고 했죠.
예전에는 칼아츠가 디즈니 스타일을 가르쳐서 디즈니에 학생들을 공급(?)해 왔는데 교수가 바뀌면서 '이제 더이상 우리는 디즈니 스타일을 고집하면 안되고
다양한 색깔을 가져야 한다'라고 방향을 바꿨어요. 결과적으로는 그게 성공했죠. 그렇게 나온 친구들이 카툰네트워크, 니켈로디언에 가서 크리에이터로 활약을
많이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디즈니를 목표로 하고 온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불만도 많았어요.
나중에 보니 그런 친구들은 그림을 배울거라는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오는 거예요. 칼아츠는 그림을 가르쳐 주는 학교가 아니예요. 이미 그림이 마스터가 된 후에
올 수 있는 어드밴스 레벨의 학교인 거죠. 학교에 대한 철저한 조사, 그리고 내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어서 그 다음 단계로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것들을 배우는 거지
여기에서 시작하려고 하면 배울 수가 없어요.
로스트인오즈(Lost in OZ)에 관련하여 그 당시에 생소했던 아마존 플랫폼에서 연재를 하게된 계기가 있나요?
어느 날, 마블 사장이었던 프로듀서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아마존에서 제작하는 새로운 쇼가 하나 들어가는데 인터뷰 한 번 보라고 하길래 만났죠.
4명의 크리에이터를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오즈의 마법사 컨셉으로 만드는 쇼였어요. 파일럿 에피소드를 보고 어떻게 하면 이 쇼를 좀 더 좋게 만들 수 있고
내가 어떤 부분에서 어떤 식으로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제 관점에서의 장단점들을 분석해 얘기했더니 이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들이 작업하면서 느꼈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줄 수 있겠다며 결국 제가 총감독으로 낙점이 됐죠. 그렇게 아마존 작품에 참여하게 됐어요.
사실 제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라 아마존이든 넷플릭스든 작품이 있어야 하고 그 쪽에서 저를 마음에 들어해야 할 수 있는 거죠.
- 총감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컨셉과 큰 스토리의 흐름은 크리에이터가 만들어요. 간혹 크리에이터가 총감독까지 하기도 하지만 그러면 일의 양이 엄청 많아요. 그래서 대체적으로 시스템이 나눠집니다.
스토리를 전반적으로 관장하는 EP가 있고, 그 다음에 총감독이 있어서 서로서로 조율을 하는 거죠. 각 에피소드의 스토리가 나오면 그 이후 단계부터는 제가 다 맡아서
일을 진행했어요. 스크립트를 보면서 진행, 배경, 소품, 액션, 스토리 등을 구상하고 문제가 있는 부분은 이야기해서 고치도록하죠.
각 에피소드의 감독과 스토리보드를 시작하기 전에 미팅을 하고 느낌과 뉘앙스, 액션의 강약 등등 모두 다 디렉션을 줘요. 에피소드 감독은 다른 에피소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 한 명이 그걸 전부 다 관장을 해야 해요. 그게 제 역할이었죠.